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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재 오염물 흡수 수증기 뿜어 공기 순환
파키라·행운목은 거실 아이방은 게발선인장

[조선일보 김철중·의학전문 기자]

‘새집증후군’ ‘빌딩증후군’ 등 실내 공기 오염이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 집안 분위기도 살리고 실내 오염 물질도 자연스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실내에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는 과정에서 잎의 뒷면에 있는 작은 기공(氣孔)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건축자재 등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벤젠 등 휘발성 유기화합 오염 물질을 흡수한다. 반면 뿌리에서 흡수한 산소와 물을 수증기 형태로 배출, 자연스레 실내공기의 순환이 이뤄지게 한다. 또한 식물은 실내 온도와 습도를 가장 쾌적한 상태가 되도록 자동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천연 공기 청정기이자 지능형 항온·항습기가 바로 식물인 셈이다.

■특성에 맞게 배치해야 최적 효과

우선 거실은 넓은 공간을 감안하여 공기 정화 효과가 큰 잎이 많은 파키라, 행운목, 벤자민, 고무나무 등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밝은 분위기 연출을 위해 겨울철에도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게발선인장이나 시클라멘 등의 식물을 곁들이는 것이 권장된다. 거실은 바닥뿐 아니라 장식장 위에서 아래로 늘어지는 식물을 배치하면 공기 정화 효과도 좋고 공간 활력도 더할 수 있다.

침실에는 너무 많은 화분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녹색 식물 위주로 해서 편안한 수면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 작은 크기의 화분을 침대 머리맡이나 창가에 두면 된다. 건조한 환경의 아파트라면 수면 중 침실 습도 유지를 위해 하루에 1ℓ 정도의 물을 발산해 가습기 역할을 하는 아레카야자를 두면 좋다.

현관과 복도는 대부분 북향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내한성이 강한 필로덴드론, 산세베리아 등이 좋다. 햇빛 부족으로 시들거나 햇빛 방향으로 휠 수 있으므로 일정 기간 한 번씩 위치를 바꿔주는 게 좋다. 욕실은 어둡고 좁은 공간이므로 큰 식물은 답답함을 준다. 습기에 강하고 일조량이 비교적 적은 환경에도 강한 헤데라와 골든포토스 등을 배치한다.

부엌은 요리를 하는 공간이므로 냄새제거에 효과가 있는 스파티 필럼이 적당하다. 부엌에 식물을 두면 공기정화와 더불어 식욕을 돋우는 효과도 있다.

겨울철 창문을 오랫동안 닫아두는 어린이방에는 게발선인장을 두면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게발선인장은 다른 식물들과 반대로 밤에 산소를 많이 내므로 성장기 어린이들이 수면 중에 충분한 산소를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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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대화를 해보자

녹색이 주는 정서적 안정과 함께 식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식물과의 교감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 식물이 시들지 않도록 매일 살펴보는 것은 살아 있는 개체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독신자나 노인들은 이런 과정에서 외로움과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생활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식물 키우기는 ‘원예 치료’로도 활용된다.

신구대 도시원예과 김훈식 겸임교수는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은 식물은 예쁜 꽃과 잎을 더 잘 피운다”며 “인간과 식물이 교감하면서 서로 정신적인 위안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같은 식물이라도 화목한 가정의 식물은 잎이 무성하고 꽃이 예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폼페이(스크롤 압박)

Posted 2004. 10. 30. 02:20

지금은 내륙(內陸)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江)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帝政)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처음에는 오스키인(人)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BC 470∼BC 424년경에는 에트루리아인(人)이 차지하였고, 그 뒤 BC 80년까지는 삼니트인들이 도시를 지배하였다.

그동안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시(植民市)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BC 3세기 중반부터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발굴 결과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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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지고 있다. 그후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 BC 91∼BC 88) 때에는 동맹시 쪽에 가담하였으므로 BC 89년에 로마의 장군 술라의 공격에 굴복,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부터 급격히 로마화(化)하였다.

제정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고대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인구는 2만∼5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인구의 계절적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었다. 폼페이에서는 대폭발이 있기 이전인 63년 2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뒤 다시 복구되어 전보다 훨씬 훌륭한 도시로 재건되었으나,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력(火山礫)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버렸다.

당시의 분화상황은 소(小)플리니우스가 실감있게 전해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은 참화를 면했으나 2,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분화가 멎은 뒤 재보(財寶)를 발굴한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잊혀졌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착수하여 꾸준히 발굴이 계속되었으며, 옛 시가의 거의 절반 정도가 발굴되었다.

벽화를 포함한 초기의 발굴품은 대부분 나폴리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가급적 현지에서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그것들은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폼페이의 많은 벽화를 통하여 유품이 적은 헬레니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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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레스의성단- 폼페이에 위치하는 가정의 수호신들인 라레스 푸블리치 동상들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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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신전- 폼페이에 있는 아폴로신전의 조각과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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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본단 차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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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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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베이커리 - 스타비아나 거리에 있는 모데스토의 베이커리에서는 밀가루 반죽 도구와 탄화된 빵 덩어리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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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벽화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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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스타비아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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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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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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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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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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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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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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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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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 제단 -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의 고대도시 폼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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