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Posted 2004. 5. 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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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에서 그리스 본토로 이동해 온 도리아족은 선주 민족을 정복하고 이들의 문화에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더하여, 서양문화의 모체인 눈부신 그리이스 문화를 만들었다.
넓게 흩어진 소규모의 여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 공동체가 모여 마침내 폴리스(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각각의 폴리스는 아주 독립적이었으며 그들 나름의 개성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독립된 폴리스들은 공통의 언어와 종교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범그리이스 성소에서 서로 만나 신들을 기리는 체육, 시, 음악경연을 펼치곤 하였다.
그리이스의 역사는 개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는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한 위엄있는 존재였지만 인간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단지 죽지 않는 다는 점에서만 인간과 달랐다. 
그리이스인들은 초기에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형태를 중시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으나 생각하는 근본에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했고, 현실의 인간을 모든 세계관의 척도로 하는 사고법이 있었다.
이러한 사상은 이전의 미술을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에로 이행시켰던 근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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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의 시대적 분류

□ 미케네 시대
이 시기의 그리스 조각은 크레타 미술의 모방과 그 양식을 따른 것이었지만, 그리스적 합리성과 추상성을 보여 준다.

□ 기하학 양식 시대 
북방에서 그리이스 본토로 이동해 온 도리아족으로 인해, 크레타 양식에서 이탈하고 새로운 양식으로서의 기하학양식이 그리스 각지에 생겨난 시기이다. 브론즈 소품들인 남자의 나체, 전사, 말, 괴수 등의 조각은 기하학 양식의 항아리 그림과 같이 신체의 마디가 강조되고, 추상화와 안정감이 강하며 생명력이 넘치게 표현되었지만 조소성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였다. 

□ 아르카이크시대(기원전 7세기~기원전 6세기)
BC 8세기 중반 이후 오리엔트 지방과 교류하면서부터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영향을 받아, BC 7세기부터 그리스 조각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조각의 특징을 보면 초기의 아르카이크 시대에는 영원성을 추구하는 이집트 조각의 영향을 받아 강한 정면성과, 육체의 각 부분의 조립을 사실에 입각한 묘사적 의지에 의하기 보다 견고한 형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구조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또한 아르카이크 미소라는 특이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중기로 가면 주제와는 상관없는 가로 기어다니는 뱀이나 괴수를 박공벽 끝의 좁은 공간에 넣어 공간을 해결하였으며 이 시대의 말기에서는 그리이스 미술 특유의 충실한 관찰을 기본으로 한 묘사가 더해져서 한층 자연스러운 조각들이 만들어 졌고, 아르카이크 미소가 사라지고 초기의 구성주의가 뒤로 밀려 났다.    

□ 클래식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전 4세기)
아르카이크 후기의 묘사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 시기로 조화미, 이상미를 추구한 그리이스 미술의 전성기이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이스는 모든 면에서 현저한 발전을 이루고 새로이 고전기를 꽃피웠며 긴장한 시대의 정신과 생기로 인해 아르카이크 미소가 사라지고 묵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이 시기의 대표적 조각가는 뮈론, 페이디아스, 폴뤼클레이토스가 있었다.
뮈론은 운동이라는 격렬한 움직임의 정점에 도달한 긴장의 순간을 잘 묘사하였다.
감정의 절제된 운동미를 표현하고 예리한 관찰에 의해 인체의 구조를 밝히고, 그것을 묘사하려고 하는 것이 뮈론 작품의 특징이다.
페이디아스는 동시대사람들로부터 ‘신 그것을 나타냈다’라고 할 정도로 칭찬되었는데, 조각의 형태를 통해서 그 배후의 정신을 표현하려고 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인체의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계산적으로 산출하여 그의 조각상에 두부가 전신의 7분의 1일로 하여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이스인의 미를 수치로 표현하는 이지적, 합리적인 태도가 잘 나타난다.
이시기의 조각의 특징은 억제된 감정과 내면의 계시가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과 골격의 축이 수직선이 아닌 S자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클래식 후기에는 정신성 보다는 감각적인 모습을 숭고한 모습보다는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는 작품을 만든다. 

□ 헬레니즘시대(BC3세기~BC1새기)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의 온갖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시기로 자연이나 현실의 관찰이 세밀해지고 사실묘사가 행해져 초상조각이 발달하기도 하였으며 운동감은 날개, 옷 주름 등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표현하였으며 주제도 범위가 넓어져 노인, 다른인종, 동물들과 그 밖에 세속적인 것들도 다루어 졌다.
헬레니즘 문화는 서쪽으로 로마에 유입되어 서양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동으로는 인도에 이르러 간다라 미술과 아쇼카 왕 치하에서의 불교 미술을 탄생시킨다.


그리이스 회화는 벽화중심이어서 건축이 사라지면서 오늘날 남겨진 작품이 없지만 많은 채화도기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있다. 그리이스 시대에 제작한 도기들은 흙색을 대신하여 검은 색과 어두운 붉은 색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으며, 과감한 단축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단축법은 평면에 공간성을 부여하는 조건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러한 수법으로 인해 이집트의 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형식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인물의 눈을 측면시점으로 보고 있으며, 사물을 보는 시점은 이전의 왜곡된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으로 발전되고 있다. 

 

 

출처:http://www.interiall.com/  ㅡ인터넷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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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Posted 2004. 5. 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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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는 테베레강 하구에서 우안의 홍적층 대지와 좌안의 알바노 화산군의 용암에 의해서 좁아지고 있는 지점(현재의 티베리나섬 부근)까지 작은 배가 올라갈 수 있었고, 그보다 좀더 상류에는 아펜니노의 구릉지대에 이르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아니에네강이 합류하였다. 바로 이곳은 에트루리아·라틴·사비누스의 3종족이 접하는 곳이기도 하며, 그러한 교통의 요소에 시장도시로서 기원한 것이 바로 로마였다. BC 5세기경부터 500년까지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로마제국 전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로마의 미술은 일찍이 이탈리아반도로 이주해 온 에트루리아인의 미술과 반도 남부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인의 미술, 이 두 요소를 이어받아 이것들을 융합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로마 미술은 그 형식의 대부분이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하였으나 에트루리아가 점차 세련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게 되자 로마도 서서히 그 형식을 계승하고 다시 공화정(共和政) 말기부터 직접 헬레니즘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하여 그레코로만 시대를 출현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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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 건축

로마 미술의 특질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것은 건축이다. 로마하면 판테온(만신전), 콜로세움, 개선문 등의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로마미술은 건축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로마가 예술사에 기여한 것은 건축공학이며, 특히 공리성,규모의 장대함은 현대적 관점과 기능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건축에는 아치, 둥근볼트의 공학적 원리가 적용되었으며,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건자재가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바실리카나 개선문, 콜로세움, 대목욕탕처럼 기념비적이고 비종교적인 건축과 더불어 포장도로, 다리, 터널, 하수구, 운하 등 실용적인 토목공학도 발달했다.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 건축은 외관 미를 추구한 그리스 건축과는 달리 거주성(居住性)에 기초를 두고 내부 공간을 충실히 하였다. 기둥과 들보로 이루어진 그리스 건축과 에트루리아의 분묘나 성문에 사용한 아치형식 또는 궁륭식(穹式)을 채용함으로써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건축양식으로서의 오더(order:고전 건축에서 형식·장식 등을 규정한 건축 양식의 규범)로서는 그리스의 도리스·이오니아·코린트의 3양식에 덧붙여 새로 이오니아식의 주두(柱頭)와 코린트식의 주두를 짜맞춘 콤포지트식, 그리고 에트루리아 건축에서 유래한 토스카나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구조면에서는 아치형이나 궁륭식을 채용함으로써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리고 다시 그 위에 분말로 된 일종의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법을 도입함으로써 거대한 건물의 건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로마 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말하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가장 큰 원개건축(圓蓋建築)이다. 로마 건축의 또 다른 큰 특징은 건축의 다양성이다.
로마건축을 대표하는 콜로세움은 대경기장이자 기독교도를 박해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리스 건축의 세 양식인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를 모두 적용한 건축물이다. 특히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폭발로 전 도시가 화산재로 뒤덮혀 버렸던 폼페이와 헤르클라네움의 유적을 보면 점포와 주택, 여러 층의 공동주택(아파트먼트와 같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 및 개선문,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콜로세움,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 갈의 수도교(水道橋) 등이 있다.

출처:http://www.interiall.com/  ㅡ인터넷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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