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Posted 2004. 5. 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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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미술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스·로마 미술은 인간 중심의 미술이었으나 중세는 기독교 중심의 미술이었다. 지하묘굴의 프레스코 벽화로 대표되는 카타콤 미술은 크리스트교 박해 시대의 미술로 초기 기독교 미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초기 교회 양식으로 로마의 바실리카를 모방한 바실리카 양식이 주된 흐름이 된다

중세 유럽의 대부분의 미술이 기독교 미술이지만, 초기 기독교 미술은 그 중에서도 주로 이탈리아나 지중해 서쪽 지역의 미술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 시기의 동유럽은 이른바 비잔틴 미술과 새로 유입된 게르만 족의 투박한 미술이 유행하였다. 물론 동·서 유럽 미술의 경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중복은 불가피하다.

초기 기독교시대에는1세기의 초기 그리스도교인 공동체 시대로부터 그리스도교 박해시대까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승인한 서기 325년부터 서로마 지역이 야만족 왕국들의 지배하에 있던 서기 500년 까지로 편의상 두 시기로 나누고 있다.

초기 기독교는 합법적이지 않은 종교였기 때문에 온갖 박해와 수모를 겪었으며 박해가 심할수록 그들은 로마의 지하묘소 카타콤에 숨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국교로 승인된 후에 미술에 혁신적인 계기가 되어 이곳 저곳에 고도의 기능을 갖춘 거대한 건축물들이 세워지고 교회벽면과 천장을 장식하기 위해 카타콤의 소박한 그림을 대신해서 새로운 예술형식 즉 불에 구운 색유리를 재료를 쓴 초기 벽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기독교가 내세의 구원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의 산물인 지상의 물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우상화 경향은 금지시 되었으며 그러한 결과로 중세 미술은 영혼의 표현에 치중하게 되고 예수를 비롯한 형상이 그려지지 않게 되었다. 반면 양이나 물고기, 비둘기 등 전통적 기독교 관념을 상징화한 도상학이 나타나게 되면서 회화가 기독교 교리를 설교하는 것만으로 한정되어 결국 교회에 예속된 중세미술은 설명적이고 장식적 것이 되었다.

 

고대 로마는 테베레강 하구에서 우안의 홍적층 대지와 좌안의 알바노 화산군의 용암에 의해서 좁아지고 있는 지점(현재의 티베리나섬 부근)까지 작은 배가 올라갈 수 있었고, 그보다 좀더 상류에는 아펜니노의 구릉지대에 이르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아니에네강이 합류하였다. 바로 이곳은 에트루리아·라틴·사비누스의 3종족이 접하는 곳이기도 하며, 그러한 교통의 요소에 시장도시로서 기원한 것이 바로 로마였다. BC 5세기경부터 500년까지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로마제국 전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로마의 미술은 일찍이 이탈리아반도로 이주해 온 에트루리아인의 미술과 반도 남부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인의 미술, 이 두 요소를 이어받아 이것들을 융합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로마 미술은 그 형식의 대부분이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하였으나 에트루리아가 점차 세련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게 되자 로마도 서서히 그 형식을 계승하고 다시 공화정(共和政) 말기부터 직접 헬레니즘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하여 그레코로만 시대를 출현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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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 건축

로마 미술의 특질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것은 건축이다. 로마하면 판테온(만신전), 콜로세움, 개선문 등의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로마미술은 건축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로마가 예술사에 기여한 것은 건축공학이며, 특히 공리성,규모의 장대함은 현대적 관점과 기능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건축에는 아치, 둥근볼트의 공학적 원리가 적용되었으며,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건자재가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바실리카나 개선문, 콜로세움, 대목욕탕처럼 기념비적이고 비종교적인 건축과 더불어 포장도로, 다리, 터널, 하수구, 운하 등 실용적인 토목공학도 발달했다.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 건축은 외관 미를 추구한 그리스 건축과는 달리 거주성(居住性)에 기초를 두고 내부 공간을 충실히 하였다. 기둥과 들보로 이루어진 그리스 건축과 에트루리아의 분묘나 성문에 사용한 아치형식 또는 궁륭식(穹式)을 채용함으로써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건축양식으로서의 오더(order:고전 건축에서 형식·장식 등을 규정한 건축 양식의 규범)로서는 그리스의 도리스·이오니아·코린트의 3양식에 덧붙여 새로 이오니아식의 주두(柱頭)와 코린트식의 주두를 짜맞춘 콤포지트식, 그리고 에트루리아 건축에서 유래한 토스카나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구조면에서는 아치형이나 궁륭식을 채용함으로써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리고 다시 그 위에 분말로 된 일종의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법을 도입함으로써 거대한 건물의 건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로마 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말하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가장 큰 원개건축(圓蓋建築)이다. 로마 건축의 또 다른 큰 특징은 건축의 다양성이다.
로마건축을 대표하는 콜로세움은 대경기장이자 기독교도를 박해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리스 건축의 세 양식인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를 모두 적용한 건축물이다. 특히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폭발로 전 도시가 화산재로 뒤덮혀 버렸던 폼페이와 헤르클라네움의 유적을 보면 점포와 주택, 여러 층의 공동주택(아파트먼트와 같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 및 개선문,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콜로세움,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 갈의 수도교(水道橋) 등이 있다.

출처:http://www.interiall.com/  ㅡ인터넷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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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Posted 2004. 5. 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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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미술이란1000년경부터 1200년 사이에 유럽전역에 걸쳐 발달했던 기독교 미술을 말하는데 서로마를 계승한 서유럽의 미술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로마네스크 미술은 형성되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게르만 민족의 향토적 전통 위에 고대 로마 양식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미술로 서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미술이다. 이 시기의 미술품들은 위압적이면서 교화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며, 이는 문맹자들에게 성서의 역할을 하고 신자들에 정신적 각성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서도 교회건축은 미술의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는 교회가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지상의 천국이라고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건축이중심이 되어 조각이 나 회화는 교회 건물의 종속적 장식물로서 발달하였다.


건축의 특징은 아치형의 석조 천장과 이것을 받쳐주는 창문없는 두꺼운 벽, 그리고 굵은 기둥을 지닌 양식이며 평면은 라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세의 상징주의를 엿볼 수 있다. 조각으로는 교회 출입문 정면이나 좌우에 있는 기둥에 성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을 새긴 것으로 창이 작고 벽이 넓은 로마네스크 교회의 실내는 거의 모두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회화는 고유의 도상을 발전시켜 심원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형식적으로는 육체적인 미의 이미지를 배격하고 정신적이고 영원한 미를 추구하였다. 벽화로는 프레스코화, 템페라화 등이 발달하였는데 그 힘찬 터치와 대담한 채색법은 현대미술에도 영향을 주었고 인물묘사에서는 초현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건축

로마네스크 건축은 10세기말 이후 유럽의 여러 곳으로 급속하게 퍼져 1100년을 전후하여 그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건축의 특색은 바실리카식 설계로 된 네이브의 목조 천장을 석조궁륭(Vault)으로 바꾼 점에 있다. 석조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교회건축이 신의 집으로서 불연성의 항구적인 건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으며 음향적인 효과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아치의 집합체인 로마네스크 건축의 중심문제는 중앙의 네이브부분에 빛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조적 볼트 구조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생긴 것이 4개의 만곡된 면으로 이루어진 4분볼트가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10세기 말 이후 유럽의 여러 곳으로 급속하게 퍼져 1100년을 전후하여 그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 건축양식 외에 다른 두드러진 경향은 찾아볼 수 없다.

‘황제의 돔’이라고 일컫는 슈파이어·보름스·밤베르크 등의 독일 성당은 3랑식(三廊式)으로 이중내진형식(二重內陣形式)을 즐겨 채택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평활(平滑)한 정면을 갖춘 3랑식· 5랑식의 바실리카 형식 등이 많다.


≪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색 “반원 아치의 집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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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르냉 대성당

1080 ~ 1120, 툴루즈,프랑스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로마와 같은'이라는 뜻으로 19세기에 고안된 말이다. 원래 이 용어는 주로 건축에서 사용된 것으로,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건물들이 두꺼운 벽과 아치가 있는 고대 로마의 석조 건물과 닮았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궁륭의 이용이다. 궁륭은 석조로 된 둥근 지붕으로 덮힌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원주나 문설주 위에 수평 들보가 가로 놓인 상인방 구조의 입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궁륭의 기본 구조는 아치와 버팀 기둥 체계이다. 버팀 기둥은 자유롭게 서 있는 단단한 석조 지탱 물이다. 궁륭을 이루게 되는 아치는 일련의 쐐기모양 벽돌로 이루어진 구조 전체이다. 이 벽돌들은 부스와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입구 위에 걸치는 데 이용된다. 아치는 단순한 상인방보다는 더 넓은 입구에 걸칠 수 있기 때문에 건축가는 궁륭의 구조 내에서 지탱물들을 보다 적게 쓸 수가 있다.

기독교도 건축가들에게는 이것이 커다란 이점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 내부를 가능한 장애물이 적도록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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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초엽까지 목조였던 바실리카식 설계로 된 네이브(nave:本堂)의 천장을 석조궁륭(石造穹:vault)으로 바꾼 점에 있다. 목조천장도 라인란트 등지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석조궁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1.불연성의 항구적인 건물이 바람직하기 때문

2.석재공간으로서의 통일성이 생김

3.음향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

   회화

로마네스크 회화는 교화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고유의 도상을 발전시켰다. 내용적으로 교훈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고 벽화의 경우 주로 교회당 내부 벽면을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성서역할을 하였다. 주로 ㅡ레스코화나 템페라화 등이 발달하였는데 터치가 힘차고 대담한 채색법을 사용하였다. 조각이나 회화의 인물의 모습은 모두 초현실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고, 여러형상은 일정한 유형으로 도식화의 경향을 띠고 있다.

이 시기에는 육체적인 미가 아닌 정신적이고 영원한 미를 추구하면서 형태는 사실성이 결여 되어 있고 색체도 또한 자연의 모방적 색체가 아닌 자기가 원하는 색체를 사용함으로써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법을 통해 작품을 제작했다.
 

   조각

건축의 일부분으로 제작되어 건축과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마네스크 미술에서의 조각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건축장식으로서 건축의 선, 면, 양감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인간이나 동물 등의 각 모티브들의 건축의 기하학적 형태라는 틀에 맟춰지는 경향이 있다. 건축조각 이외 금속공예와 상아공예 및 성당건축을 장식한 기념물적인 조각등이 있다.

 

 

출처:http://www.interiall.com/  ㅡ인터넷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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