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구조 명칭도 -유교건축-

Posted 2005. 3. 3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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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교

 향교는 주로 조선시대 지방의 유풍을 진작시키고 아울러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국의 크고 작은 고을에 설치했던 관학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향교의 설립은 고려 중기로 올라가며 고려시대 향교제도는 중국의 향교제도를 도입하였다. 조선시대의 향교는 유교의 기본정신을 배우고 익히며 점검검하는 곳으로 이는 사회 교화의 이념이 다름 아닌 유교이념이었고, 또한 유교정신, 유교윤리를 국가가 설립한 향교를 중심으로 실천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각 왕들이 향교설립을 통해 그 기반을 견고히 하려 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중앙에서 지방 군,현을 획일적으로 쉽게 통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향교는 지방에 설치한 제사 건축인 문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문묘가 없으면 향교의 개념에 들지 않았다.

 즉, 향교는 지방민을 교육하고 교화하는 학교이전에 '문묘'라고 하는 제사영역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존재 의미가 있었다. 문묘는 전통적인 유학의 정신적 지주 역할로 그 존재가치가 컷던 만큼 향교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외 서무35가 함께 자리하여 형성된 구역이다.

□ 나주향교

나주향교는 '전묘 후학'의 배치 유형으로 앞쪽에 문묘가 오고 같은 축선상의 뒷쪽에 강학구역이 위치했으며 성현의 신의를 안치한 문묘구역이 강학구역보다 위계성이 앞선다는 논리에서 구성되었다.

배치 모습에서 보듯이 동·서재가 각각 11칸이며 성균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계성사도 있다. 계성사는 공자와 사성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이다.

또한 문묘구역은 대성전과 동·서무라는 명칭상 부터 현격한 차이를 두었는데 예를 들자면 공자를 비롯해 사성을 모신 건물은 '천'으로 명명하여 대궐과 같은 위계를 같게 한 반면 우리나라 18현 및 중국의 하위 선현을 모신 건물은 '무'라고 하여 행랑의 정도로 격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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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나주향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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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

 서원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리학적 고급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 중기에 주로 설립되었던 조선조 최고의 학당이라고 할 수 있다. 서원은 사학으로서, 물론 서원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대학에 해당하는 고등 교육기관이었다. 당시 서원의 설립자는 대 유학자나 그를 흠모하는 후학이 설립과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였다. 물론 조선시대 내내 서원이 성리학 연구를 전제로 한 도학서원의 성격으로 설립과 운영이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원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기능도 본래의 추구했던 교육기능보다는 선현의 향사 중심으로 성격이 변모하여 '시우'와도 구분이 안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사회에서 서원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서회적 의미는 서원의 개설을 계기로 향촌에서 학문을 닦는 풍토가 무르익게 되었고 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인사가 대부분 당대 명성을 떨치었던 거물들이었기에 해당지역민들의 정신적인 귀감이 되어 효제 충신의 정도를 깨우치게 하기도 했다.

 서원기능의 핵인 사당과 강당은 서원건축의 시작이다. 이는 서원의 설립이 선현을 봉사하고 아울러 유학강론에 주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사당과 현세적인 강당은 사원의 기본을 이루는 것으로 모든 서원에서 건립되었다.
 또한 서원건축의 기본적인 배치구도는 서원이 입지한 지형이나 건립시기, 기타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전면에 강학구역을 두고 후면에 제향구역을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으로 일관된다.

□ 도동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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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동서원은 1604년에 창건되엇으며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이었다.
 강당은 정면 다섯칸, 측면 두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도 되었으며, 주심포식 1출목의 공포를 갖고 있어 헛첨자와 쇠서의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중앙의 세칸은 대청을 만들고, 좌우의 한칸은 온돌로 하였으며, 전면 한칸은 퇴간으로 하여 툇마루를 두고 전부 개방하였다.
 이 건물은 서원 강당으로서 격식을 갖추어 만든 대표적인 예이다.

[ 자료출처 : 한국의 유교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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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세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으며, 공포 형식은 강당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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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한국문화재 총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