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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31 건축 구조 명칭도 -관영건축-

건축 구조 명칭도 -관영건축-

Posted 2005. 3. 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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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

 조선시대 궁궐건축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크고 화려하게 건설되었다. 크게 정궁, 이궁, 행궁, 별관으로 나눈다. 정궁은 수도중앙의 기본궁(경복궁)이며, 이궁은 별궁의 기능을 수행하는 궁(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이며, 행궁은 왕이 일정 기간씩 머무르는 지방에 있는 궁(수원 행궁, 남한산성 행궁, 북한산성 행궁, 강화도 행궁, 평양 행궁 등)이며, 별관은 지방에 행차할 때 왕실에서 임시로 이용하는 건물(충주별관, 이주별관, 나주별관)이다.

 궁궐 본전을 중심으로 한 궁궐 전체 지역의 배치계획과 건물의 기능은 조선 특유의 독자성을 지니며 최고 지배층인 왕족과 사대부 계층이 사용한 건물이었기 때문에 당시 최고 수준의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창경궁 명정전

 이중으로 석단을 쌓아 올린 중앙에 돌계단을 두었으며, 그위에 다시 장대석의 낮은 기단을 마련하였는데 윗면에는 벽돌을 깔고 원형의 주춧돌을 놓았다. 건물은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4출목의 다포계 공포를 받쳤는데 쇠서의 곡선은 비교적 강직하고 보머리 등의 형태는 삼각형을 이룬 삼분두형으로 조선 초기에서 볼 수 있는 세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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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정전 정면도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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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정전 측면도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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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정전 종단면도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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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정전 횡단면도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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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정전 암시도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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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

 우리나라는 전체면적의 약 7할이 산지로 되어 있어 일정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예부터 자연적·인공적 외침에 대비하며 스스로의 거주영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하여 왔다. 성곽이란 군사적, 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일정한 공동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전통건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화성 팔달문과 오성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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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팔달문과 오성지문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임진왜란의 경험과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지어진 화성은 정조 18년(1794)에 기공하여 2년만에 완공되었다. 가장 발달된 축성법을 쓰고 있으며 시공에서도 기중기, 녹로 등의 여러 가지 시공 기계를 사용하였으며 기와, 벽돌 등을 개량된 방법으로 제작하는 등 획기적이고 계획적인 시공을 시도했으며 그 상세한 내용은 「화성성역의 궤도설」에 기록되어 있다.

 석축과 벽돌을 적절히 조화시킨 화성은 평지와 배면의 팔달산에 둘러싸인 지형의 고저와 굴곡에 맞추어 축성되었다. 북쪽에 장안문, 남쪽에 팔달문의 두 대문을 두고 그 밖으로는 아담한 옹성을쌓았다. 동서에 창룡문, 화서문을 두고, 암·수문과 기타 시설을 조성하였으며 전체 성벽 둘레는 8.36km에 이른다.

 도성 남쪽에 위치한 팔달문은 문루의 하층이 심주춧돌 위에 원주석을 기초로 하여 평주를 세웠으며 이 평주는 민흘림 기둥이다.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평방을 짜서 돌리고 주두위에 2제공의 공포를 짰다. 공포는 외 2출목, 내 3출목으로 되어 있으며 외부는 수서로 하고 내부는 운공으로 구성하는 조선후기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 평양 보통문

평양 성곽의 내성은 태종 6년에 개축한 것으로 동남쪽 전면에 대동강을 두고, 서북쪽으로는 금수산, 창랑산 산기슭을 따라 연속되는 성벽과 강면에 비친 누정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선시대 건축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통문은 외형이 정면 세칸, 측면 세칸으로 되어 있으며, 중층 우진각 지붕을 가진 건물인데 건립연대는 건물 수리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1473년을 개건시기로 보고 있다. 공포는 내외 모두 2출목이나 위층은 두공위에 첨자가 세토막으로 겹쳐있다.

아래층은 두공위에 제공만 위층과 같이 처리하고 툇보 끝을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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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보통문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있다. 근본적으로 이 구조법은 고주와 평주 사이의 횡보위에 짧은 기둥을 올리고 위층을 구성하는 불탑의 구성 수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더욱이 내부 가구가 구조적 역할을 하고, 외부 가구는 입면상 필요에 의해 만드는 조선 특유의 축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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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사

 읍성 안에서 가장 중심되는 곳에 자리하여 왕을 상징하는 전패와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를 안치하고 문안을 드리는 주사와 옆에 연결된 역사로 구분된다.

주사의 기능은 전패와 궐패를 안치하여 중앙에서 멀리 있는 지방에서도 왕의 시책을 충실히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기능이며, 익사의 기능은 온돌 방을 두어 외국의 사신이나 중앙의 관리들을 접대, 수행하고 이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기능이다. 또한 객사에는 사신과 중앙관리들의 접대를 위해 큰 누정을 세우기도 하였다.

□ 강릉 객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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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객사문 외관의 각부 명칭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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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객사문 세부 명칭
(자료 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고려 말기의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된 단층구조로 되어 있으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기단은 정면과 측면만 단을 두어 쌓았고 화강석을 거칠게 다듬은 초석은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앞 뒤 열의 변주는 배흘림이 뚜렷한 둥근기둥이고 판문이 달리는 중앙열의 기둥은 민흘림의 사각 기둥이다. 변주의 배흘림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 중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으로 1/3 되는 지점이 가장 굵고 여기서 위아래 방향으로 줄어 들어 상부에서 가장 가늘게 된다.

사각기둥 위에서 주두와 첨차를 놓아 대들보를 받들고 대들보 위에는 종보를 받기 위한 화반과 포대공 그리고 우미량을 짜올려 놓고 종보 위에는 간단한 판대공을 놓고 그 위에 종도리를 올렸다.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이 있으며 살미형 첨차는 쇠서의 초기적 형식이며 공포의 짜임은 건물 내외로 걸쳐지는 살미형 첨차를 두드러지게 사용한 수덕사식이며 외목도리에 단장혀를 사용했고 종보머리는 당초무늬 새김을, 또 대들보 위 종보 밑에는 투각된 화반과 포대공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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