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문화의 재해석을 통한 실내디자인적 적용
Posted 2005. 3. 26. 08:08한국 전통문화의 재해석을 통한 실내디자인적 적용 |
한국 인테리어디자인의 오늘 |
1876년 개항이후 우리 문화는 서구의 신문화, 신문명에 의해 주도되었다. 지난 1세기 동안의 서구 문화 유입은 5천년의 우리 역사를 무색케 할 세력과 전파력으로 그들의 통치력을 과시하는 듯 보였고, 수입된 힘있고 우수한(?) 문명의 세력 앞에 힘없고 나약한 토착 문화는 현대의 그늘 속으로 숨겨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외시되고 있다. 불과 100년밖에 안된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우리 생활양식의 변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의 속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이 손 때 묻은 지필묵이며 옷가지 하나라도 가보로 간직해 숭고한 혼과 지극한 정성을 담아 귀중한 유산으로 남긴 것에 비하여 우리의 지난 100년의 외도는 참으로 길고도 무심한 것이었다. 한국의 근대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개항을 맞으면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양식과 방법에 의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신부, 선교사, 외교관들에 의해 수입된 실내장식과 가구들을 중심으로 한 서구 스타일의 건축문화가 형성되었다. 다행히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성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이후 한국 인테리어디자인계는 세계실내건축가연맹(IFI)의 상임이사국으로 선임되는 등 국제적 위상을 정립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최근 실내 디자인계는 I.M.F라는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함으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고, 건축 관련 업계를 비롯한 대기업의 부도는 인테리어업계에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켰으며, I.M.F 체제하에 시장경제 개방은 디자인계도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자본력과 기술력이 약한 국내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뜻하지 않은 상황은 우리 디자인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외국 자본과 브랜드를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하여 다시 내다 파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런 경제 구조는 시장개방체제하에서 자본의 부족과 고유 기술 개발의 낙후로 이어져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외국 기업에 자리를 내주는 등 국가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경제 현실은 지금까지 우리 디자인계 또한 자구적 기술과 디자인 개발보다는 서양의 감성과 그들의 생활양식을 들여와 모방하거나 재구성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지는 않았는가를 뒤돌아 보게 한다. 곧 외국 디자인 회사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될 것이며 이런 열악한 상황하에서 우리 디자인계는 대변환과 혼란이 예상된다. 이미 많은 공간이 그들에 의해 설계되어지고 있는 현황에서 이대로 진행된다면 많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는 시공만을 전담하는 하도급 업체로, 디자이너는 제도사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그 각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21세기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지금, 지난 100년의 과오와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의 자세로 임해야 할 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자국적 독창성과 디자인 철학이 바탕이 된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 개발을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디자인계의 공멸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이는 국수주의나 편협한 지역주의적 차원을 벗어나 세계 문화의 흐름과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는 지구공동체 문화에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며 디자인계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통의 문화적 의미 |
문화유산은 전통과 현대성 사이의 역동성과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일 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연속성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문화유산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철학을 고찰하고 이들을 실내 건축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 한다. 학문적 접근을 통한 이론의 확립을 위함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결과물들을 함께 공유하고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 위함이다. 이론으로 그치는 연구와 학문적 기반이 부족한 현장을 잇는 작은 다리를 놓고자 함이다. T.S.엘리어트는 ‘전통은 계승될 수 없다. 만일 그것을 원한다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으며, 김수근씨 또한 ‘유산은 이어 받을 수 있고, 이어 넘길 수도 있으나 전통은 이어 받을 수도 이어 넘길 수도 없다.’라고 했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전통’은 넓은 의미로는 일정한 공동체인 가족, 지역사회, 민족, 국가 등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행동, 관습, 기술, 사상 등의 양식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그 양식의 핵심이 되는 정신만을 지칭한다. 따라서 전통이란 정신적인 것, 즉 구체적인 모양이 없는 무형지형(無形之形)을 의미하고 슬기나 지혜, 창의력, 근본적 사유태도, 사유의 방법적 문제 등과 같은 정신적 실체가 여기에 속하므로 사람이나 문헌을 통하여 전수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전승’은 과거로부터 연속성을 지닌 문화유산을 이어받아 후세에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구체적 모양이 있는 유형지형(有形之形) 을 의미하고 사유기술, 지식, 기능, 재료, 겉모양의 이음 등과 같은 외형적 물질적 실체가 포함되므로 전통보다는 상대적으로 전수하기가 쉽다.전통 건축의 처마, 서까래, 창호문양, 단청 등과 같은 실물적 형태가 논리의 준거 없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우리 한옥의 전승에 해당하고, 문화의 본의와 원리, 예를들어 비례 관계의 특성이라든지 전통 목구조의 구조, 구법의 체계, 단청의 배색원리 등을 분석해 내는 것은 한옥의 문화적 전통을 규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주관적 가치판단과 재평가, 현재성이 결여된 고전 형식의 반복이나 모방이 전통의 계승이라 하기 어렵다. 변화가 없는 연속은 타성이자 궁극적 퇴락일 뿐이며 연속성이 없는 변형은 분열과 무정형이다. 옛것을 바탕으로 현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선대와 당대의 구별조차도 어렵게 될 것이다. 전통과 답습을 구별함에 있어 김수근씨의 탁견은 다시 한번 새겨 볼만하다 하겠다. ‘전통은 현대의 눈으로 다시 보고, 나아가서 창조활동을 통하여 현대의 눈 이상 내일의 눈으로 만들어질때 당대의 전통도 가능할 것이고 다음 세대가 당대에서 이루어진 것을 그들의 문화유산으로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 아이텐티티를 문화 언어로 |
전승에 관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작업들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제 전승된 많은 것에서 전통을 발견하고 이를 현재의 시대적 상황에 맞춰 재구성해야 할 때이다. 발굴된 문화재들이 여러 가지 기술처리를 거쳐 비로소 새로운 생명을 얻듯 우리의 정신문화와 이상적 가치와 삶의 지혜들이 현세의 디자인 언어와 새로운 가치관으로 다듬어 질 때 오늘의 우리 눈 맛에, 삶의 내면에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전통을 발굴하고 현대적 조형언어로 재창조함으로써 우리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더 나아가 세계성을 띤 디자인 언어로 승화시켜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수반되어야 하며 이런 작업들이 쉬운 일들은 분명 아니다. 세계 속에서 그 국가의 고유한 문화어가 얼마나 되는지는 그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김덕수 ‘사물놀이’는 세계 무대에서 극찬을 받은 우리 문화 중의 하나이다. 세계인들은 우리의 사물놀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고 ‘사물놀이’라는 우리 고유의 언어는 세계성을 띤 문화언어로 재창조된 것이다. 비단 이 하나의 예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미 세계에 알려졌거나 알려야 할 많은 문화어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디자인계에서도 우리의 문화적 전통 속에 새로운 어휘를 보탬으로써 우리 문화 환경을 보다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세계 문화의 흐름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호부터 1998년 런던 Central Saint Martins M/A Design Studies 석사학위 논문을 요약 발취해 3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1회에서는 인테리어디자인계에 새롭게 대두되는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왜 자국적 아이덴티티를 확립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논의하였으며, 2회에서는 한국 전통건축을 중심으로 공간 구성의 특성과 공간 구성의 체계에 대해, 3회에서는 전통건축을 통해 발견한 원리와 체계를 적용한 사례를 통해 현대적 해석의 일례를 보여주고자 한다. 현대적 해석이 이런 것이라는 단언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 동안의 우리 문화에 관한 두서없는 생각들을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이 시대는 왜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는가? |
21세기로의 전환기에서 우리는 공산 세계가 무너지는 이데올로기적 체제의 변화를 경험하였고, 절대적 가치로만 여겼던 과학, 기술 문명의 회의적인 결과물을 떠안게 되는 등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세계는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는 디자인계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많은 패러다임 중 국제화와 환경이라는 2가지의 세계관적 관점에서 21세기 디자인계의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보편 문명의 등장과 다문명화 |
오늘날 세계 속의 각 사회의 상호의존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유혈폭동으로 세계의 주가가 폭락하고 아시아의 금융시장은 시위 사태에 대한 불안감으로 동요하는 등 자신이 속한 사회와 동떨어진 활동이나 사건에 의해서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되는 사회 관계의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산업과 통신의 급격한 발달은 문명의 진보와 정보 사회를 초래하였고, 또한 우리가 세계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더욱이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함께 세계가 동시적 시간-공간대로 압축되면서 상호의존적 세계체제의 구축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가 전세계인의 목을 축이고, 맥도널드 햄버거가 전통적인 식단을 위협하고 있으며, 영어는 국제활동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음악을 듣고, 특정 패션이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고, 헐리우드의 영화는 세계 시장에서 더 많은 점유율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이런 현상들을 두고 네폴(V.S.NA-IPAUL)이 말한 ‘보편 문명’이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문화적 융합을 뜻하며 세계인의 공통된 가치관, 믿음, 관습, 지향점, 제도 등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처럼 세계문화의 보편, 획일화 현상은 문화적 특수성과 전통성의 파괴를 초래하고 이는 곧 문화적 정체성 및 독립성 상실을 의미한다. 현재 경제적 국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 하나의 통일된 세계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그리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세계화의 시대가 이상으로 삼는 문화의 ‘보편성’과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을 통합하는 ‘초문화’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21C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다가오는 21세기를 ‘문화, 문명의 시대’라고 예견하고 자본주의의 승리, 서구 문명의 세계정복은 피상적 현상일 뿐이라고 밝히며, 세계적 전파 매체와 교통 발달이 몰고 올 ‘동질성’을 향한 압력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지역주의와 국수적 감정에 대한 집착으로 이끌어 각 문명의 특질을 대표하는 전통문화가 강화될 것이며 따라서 탈냉전 세계는 서구 문명에서 비서구 문명으로 힘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세계는 다극화, 다문명화 된다고 예견했다. 이는 경제 발전을 포함한 모든 사회발전을 문화화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문화의 생산과 공급은 세계화와 함께 지방화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세계적 보편성의 기초 위에서 민족적 정서와 가치를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세계 시장 속에서 경쟁력을 갖게됨을 의미한다. 일례로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 중의 하나인 소니사는 이미 일본의 모국적 감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한다는 목적성을 두고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환경 디자인과 한국 전통사상 |
세기를 바라보는 또 다른 견해는 여지껏 유래 없는 과학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인한 폐해로 지구(문명)의 존폐 위기라는 심각한 상황 인식에서 출발한다.즉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인류사의 기념비적 성장에 대한 희생양으로 하늘, 땅, 물을 착취하고 더럽혀 회생 불가능 상태로 파괴시키고 말았다. 그동안 끝없이 베풀 것이라 믿었던 자연은 인간의 무지함과 경솔한 처신에 경종을 울리고, 20세기 말 환경 문제가 위기로 치달으면서 인간은 그들이 저지른 경솔함의 댓가으로 자연의 보복를 받게 되었다는 두려움을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기능주의적 사고와 과학적 가치관이 오늘의 새로운 시대에서 근본적인 회의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외견상 가장 역동적으로 보이는 시대를 사는 우리들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생명력의 상실과 허무감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환경에 대한 통제력의 불능은 또 다른 대안을 요구하게 되고 세계는 흔히 그 대안으로서 동양사상을 거론한다. 동양의 인본주의와 자연애호사상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도덕적 타락과 물질 만능 풍조, 자연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960년대 환경 철학은 환경 위기의 극복을 위한 대안 탐색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한 비서구적 자연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일례로 화이트(L. WHITE. JR)는 도교ㆍ불교의 전통이 혼합된 선불교의 믿음을 새로운 환경 이념으로 삼았다. 탐욕과 집착의 굴레를 넘어 달관의 경지에 이름을 추구한 무아의 개념을 불교로부터 구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무위자연의 태도를 도교로 부터 구하고, 다시 심미적 자연관을 가미함으로써 전통적 자연관의 재해석을 시도했던 것이다. 과학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사고의 방향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확실성과 예측 가능성의 시대이자 뉴튼법칙에 의해 지배되던 세상은 불확실성과 애매함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서구는 세상이 신성한 생태계 내에서 구성요소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사고는 동양의 전통사상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우리는 20세기 동양과 서양의 상호작용의 접경지대로 들어갈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하늘과 땅, 인간 사이의 생태학적인 조화를 지향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 이성적 지식과 직관적 지혜의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면서, 인간성과 기술 문명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5000년 역사를 가진 한국 전통사상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위한 혼란기에 이상의 철학적 관점들은 디자인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의 이런 시대적 요구는 디자인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을 부축이고 있다. 세계 보편의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한 민족 정서의 표출, 인위적으로 계획되고 축조되는 환경과 자연 환경과의 적절한 통합 노력은 분명 이 시대와 차후를 준비하는 환경 디자인 상의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바로 우리의 전통 사상과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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