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블로그 이전 게시물/▶ Archi World

한국 건축 구조 명칭 -불교건축 사찰-

WSK 2005. 3. 31. 09:12
반응형

■ 사찰

 소수림왕 2년(372)에 중국의 승려 '눈도'에 의해서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졌으며 375년 국내성에 이불란사와 초무사가 창건된 것을 시작으로 6세기에 들어서 한반도 전역에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일본에까지 전해져 동양 전역에 불교가 정착되게 되었다.

 이러한 불교는 신앙의 대상을 모시며 제반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가람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차츰 건축물과 내외부 공간의 구성에 일정한 법식이 생겨 하나의 전형을 이루게 되었다. 가람이란 인도어의 'Sangalama'로 한문으로는 승가람마로 표현되며 승가란 중, 람마란 동안의 뜻으로 이는 중원, 즉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으로서 이것을 절, 즉 가람이라 부른다.

□ 부석사
[ 자료출처 :한국 미술문화의 이해]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의상조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한 사찰로 창건 후에는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만세루, 범종각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후일 중창하여 조성하고, 그위에 건물을 배치한 산지 사찰로서, 범종각, 안양루 등을 지나 본전인 무량수전에 이르게 된다. 특히 범종루는 본전을 향하는 방향으로 맞배지붕의 형태이고 진입되는 방향으로는 팔작지붕을 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의상조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한 사찰로 창건 후에는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만세루, 범종각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후일 중창하여 조성하고, 그위에 건물을 배치한 산지 사찰로서, 범종각, 안양루 등을 지나 본전인 무량수전에 이르게 된다. 특히 범종루는 본전을 향하는 방향으로 맞배지붕의 형태이고 진입되는 방향으로는 팔작지붕을 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자료출처 :한국 전통목조건축도집]


□ 사찰의 문    [ 자료출처 :한국 문화재 총설]

* 일주문은 절의 입구 좌우에 두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을 덮은 대문을 말한다.

* 사천왕문은 절에서 좌우간에 사천왕상을 안치한 대문으로 사천왕은 불교, 누이산의 중턱에 있는 주신을 말한다.

□ 누각

* 누각은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말한다.


■ 석불사

 지금의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제 35대, 742-764) 10년 부터 짓기 시작한 석불사이다. 석불사는 신라 토함산에 있으며 토함산은 신라 영산이었고, 나라에서 큰 제사를 지내는 다섯 뫼 중의 하나인 동악이었다.

 신라에선 동서남북 중앙 다섯 영산에 제사를 올리면서 국가 비보에 감사하였고 그 중에서도 동악을 특히 중요시했다. 토함산에 부처의 나라 불국사와 왕실지원을 위한 석불사를 지었던 것도 그런 영산의 도움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덕왕은 그 시기에 불국사와 석불사를 짓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사정이 있었고, 마침내 시중 벼슬을 지낸 김대정에게 위촉해서 경영하도록 하였고 서기 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다.

 본존이 앉은 금당 내부는 원형 평면이며 지름은 24척, 본존 대좌의 지름은 12척으로 설정되어 있다. 금당 내부 본존상 둘레에는 입구로부터 두 사람의 천부상, 두분의 보살, 열명의 제자와 십일연관음, 합해서 15상이 차례로 4척 너비의 판석에 부조되어 있다. 또한 석실금당은 방형, 8각, 원형의 만남이 의도되어 있다.




 석실의 천장을 살펴보면 정상부의 연화석 둘레에 멍에 돌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360도 전 방향에 자리잡고 있다. 이 멍에 돌들은 천장 판석이 앞으로 떨어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구실을 하고 있는데, 멍에 돌은 판석 뒤에 저 기초부터 따라 올라온 적심석과 서로 묶이면서 고정되어 있다.
 또한 빛은 전실에 떨어진 볕이 바닥과 벽면에 반사되면서 본존상으로 집중되었다고 보여진다.



십일면 관세음보살
( 자료출처 : 신영훈 '석불사 불국사', 조선일보사, 1999 )

반응형